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재개발을 앞둔 인천의 한 철마재활병원에서 일어난 4번의 연속 자살사건. 수분이 빠져나가지 못해 잘 숙성된 포도주처럼 외로움과 우울만이 존재하고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재활병원의 환자들의 자살과 그들이 남긴 명분이 분명한 유서로 인해 사람들은 단순한 연쇄 자살사건으로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모두가 자살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연은 단순한 자살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찜찜한 구석을 지울수가 없었다. 정의로움이 수사의 계기라기 보단 그녀가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어릴 죽 문방구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계기가 무엇이었든 수연은 홀로 수사를 진행하기로 다짐한다.
수사하고 있는 도중 우연히 완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를 통해 이 사건의 용의자는 뱀파이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뱀파이어가 지구 상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연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면 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네 안에 묻어 있는 편견이 얼룩이 되어 전체의 그림을 망치면 안 된다고 했던 은경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수연은 이 수사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다고 상처가 치유되는, 그런 상대성은 없다
작가 천선란이 설정한 인물들은 모두 외로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뱀파이어들의 매혹적인 말에 현혹되어 스스로 그들의 먹이를 자처했던 철마재활병원의 환자들을 막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남달랐던 수연, 해외 입양아 출신의 완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불행한 운명에 놓인 난주 그리고 기나긴 인생을 살며 여러 이별을 겪은 뱀파이어마저도 외로웠다.
외로움이라는 카테고리안에 포함되었던 그들이지만 결코 서로가 섞일 수 없었던 외로움이었다. 타인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도 조언을 들을 수도 그들의 외로움을 털어놓기도 쉽지 않았다. 인간의 고독이 담긴 피라는 목적을 가진 뱀파이어만이 그들을 위로했고 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으며 그들을 구원했다.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판매하며 사기 치던 범죄자를 두둔하고 나섰던 자들은 모두 피해자들이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또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라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계기가 무엇이든 피해자들은 가족에게서도 받지 못한 위로를 약장수에게 받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존재도 결국 그였으리라.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을지라도 피해자들에게 그의 존재는 결국 위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그들에게서 인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로운 자를 홀로 두지 않는 거에요." 이 소설을 마무리하며 남긴 수연의 대사였지만 실은 천선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이 소설의 메시지였다. 뱀파이어라는 아름답고 미스터리한 존재를 소설 속의 중심인물로 설정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열도록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세계를 넓혀간다는 건......
결국 우리는 모두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 직계가족이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겨져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천선란 작가이지만, 밴다이어그램에 의해 결국 우리 모두는 주류이면서 비주류에 걸려있는 사람들이기에 모두가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의 스펙트럼은 광활하기에 그에 따른 감정들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천선란 작가는 이 감정들을 모두 품었다. 외로움 속에서 느끼는 죽음, 사랑, 그리움 등에 대한 감정들을 피부에 실을 꿰어 늘려나가듯이 세계를 넓히듯이 묘사하여 독자들의 외로움마저 달래주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그렇게 외로움을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통해서 위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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