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프가니스탄의 소수민족 하자라(Hazarajat)족
2021년 8월 30일 연합뉴스에서는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다시 잡자 하자라족이 파키스탄으로 탈출을 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알라신을 함께 섬기고 한 나라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자라족이 탈레반의 인종청소의 대상이라는 안타까운 뉴스는 이 소식을 접하고 있는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왜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그토록 탄압을 받는 것일까요? 이에 해당하는 두 가지의 역사적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의 지역은 여러 나라로 부터 오랫동안 침략을 당해왔습니다. 그중 아프가니스탄은 13세기 때 칭기즈칸에게도 점령을 당했으며 한동안은 몽골족의 땅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인종들이 섞였고 몽골인들은 이슬람 문화에 영향을 받아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으로 개종을 하며 알라신을 섬겼습니다.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파쉬툰족들과는 달리 하자라족은 몽골인의 얼굴과 닮아있어 아프가니스탄 안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동지역의 대다수 사람들은 무함마드를 섬기는 무슬림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주교, 장로교, 감리교와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 종교들 사이에서는 많은 종파가 존재합니다. 무슬림안에서도 두 가지의 종파가 있습니다. 바로 순니파와 시아파입니다. 이 두 종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슬림 종교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알라신은 무함마드가 예언자로 지명된 것으로부터 이슬람 종교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큰 혼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무함마드의 혈족이 후계를 이어야 한다는 주장(시아파)과 무슬림의 모범이 되는 자는 그 누구라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순니파)는 두 파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순니파의 사람들이 무슬림의 90%나 될 정도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고 시아파는 그렇게 순니파의 억압을 받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지하의 세계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무슬림을 믿는 하자라족의 대부분 무함마드의 혈족을 따르는 시아파입니다. 무슬림중에서도 소수종파인 시아파에 속해있는 데다가 외모적으로도 유독 눈에 띄며 더군다나 자신의 거주지를 침략했던 칭기즈칸의 후예들이라 하니 타 부족 사람들에게 이들은 눈엣가시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원리주의를 추구하는 탈레반에게는 무함마드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하자라족은 없어져야 하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하자라 사람들은 극단적인 원리주의로부터 자유로운 파키스탄으로 이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 아미르와 하산
이 소설의 두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은 태어났을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사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단순히 친구의 관계라고 언급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자가 앞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에 필자는 리뷰의 첫 문단부터 이 소설의 배경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미르와 하산은 부잣집 도련님과 그 가정을 섬기는 종의 관계만을 가지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아미르는 파쉬툰인이며 순니파입니다. 반면 하산은 하자라인이며 시아파입니다. 이는 아미르는 높은 위치에 속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이고 하산은 소수민족에 소수종파 즉,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속한 아이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아미르의 시점으로 소설을 그렸으나 하산이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미르가 항상 곁에 있는 하산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대목들을 엿볼수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대목은 하산의 얼굴 묘사일 것입니다. 하산을 중국 인형과 같이 나무로 조각한 듯한 얼굴에 납작한 코, 그리고 그의 눈 색깔과 같이 하산의 외모는 너무나도 자세하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반면 하산 외에 다른 인물의 외모는 전혀 묘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자는 하산의 외모를 좀 더 강조하여 하산의 특별함을 부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특별한 외모 덕에 사람들은 그가 하자라인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손쉽게 멸시를 당해왔고 괴롭힘을 당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신이 진정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두 주인공의 대립을 둔 가장 큰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소설을 통해서 알리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외부의 세력이 오랜 시간동안 대항해온 나라이기도 하지만 민족 간의 다툼이 잦은 나라입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고난을 겪었던 만큼 상처 또한 깊을 수밖에 없기에 나오게 된 부작용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산의 아들인 소랍은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 아세프의 눈을 새총으로 다치게 하고는 나쁜사람일지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아버지 하산의 말을 되새기며 자책을 합니다. 하산을 성폭행하고 그의 아들까지 같은 방법으로 상처를 준 아세프는 이들이 하자라인이기에 개의치 않다 하며 탈레반에 속한 자신이야 말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인물이라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알라신이나 예언자 무함마드는 사회적 지위에 대해 논한 적이 없으며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신도들에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모세와 예수를 보내셨고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보내셨을 때 그 이후에 세상에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을 하셨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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